국민이 듣고 싶은 정치권에서 나와야 할 대화는이런 것인데 못 들어 본지가 오래 되었다.


1,"각하! 저의 경제정책은 인기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저항이 있더라도 제 말을 믿고 밀어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제5공화국 초기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나라를 살린 김재익이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전두환 대통령에게 내건 조건이다.

그는 공무원을 그만두려 사표를 내고 나갔다가 신군부 국보위에 불려와 대통령 '경제 과외 선생' 이 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어,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정통 시장경제론자였던 김재익은 오랜 숙제였던 고(高)물가를 잡아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1980년대 '3저 호황'의 기틀을 마련했던 능력과 도덕성과 실력을 갖춘 큰 인재였다. 그는 전두환대통령을 수행하고 버마에 갔다가 북한공작에 의한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살해된 아까운 인재였다

2, 박정희 대통령은 심야에 서울 혜화동 김학열 집을 자주 찾았다.

두 사람은 콩나물국에 동동주를 마시며 경제를 논했고, 취하면 황성옛터를 큰 소리로 목청을 높여 불렀다. 그러자, 눈총을 주는 김학렬 부인한테 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바깥양반은 내 과외 선생이야요. 경제 배우러 과외 선생 집에 오는데 뭐가 잘못됐어요?“라고 소리쳐 사람을 웃겼다고 한다. 김학렬은 재무장관,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처 1968년 제1경제수석이 됐다. 대한민국 경제수석 1호다..

경제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듬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된 김학열은 부하들을 호되게 일 시키기로 유명했다. 그는 이렇게 다그쳤다 한다. "출근할 필요 없다. 종합제철에만 매달려라, 이 일이 잘 안되면 우리 모두 한강에 가서 빠져 죽자"라고 했다.

김학열은 쉬임없는 겪무 끝에 오십이 안 된 나이에 작고하자 박 대통령은 "이 사람아, 내가 자네를 죽였네" 하고 목을 놓아 울부짖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성공 신화에는 고비마다 안목 있고 능력과 도덕상과 실력 있는 경제수석들이 나라 경제의 나침판 역할을 잘 했기에 가능했다.

경남 창원의 공업단지 시찰을 마치고 박정희 대통령이 간담회를 했다. 박 대통령은 오원철 제2경제수석을 기자들 앞에 불러냈다.

"오원철이는 국보야 국보!"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를 도약시킨 일곱 가지 중화학공업 육성책이 그의 건의와 머리에서 시작됐다. 그것이 성공하여 지금은 우리나라가 세계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돼었다.

그 이후 어느 정권에서도 이러한 나라를 위한 대화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인기가 없는 정책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선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요즘의 정치인들의 면면과 그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살벌하고 저질스러움에 한심하고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중희/ 포천신문사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