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곤|칼럼니스트


총 칼을 쓰는 사람들은 각기 사용 목적이 있는데 잘못 쓰다보면 결국 그 똑같은 총 칼로 되받는다. 하지만 펜으로는 크게 상처주지 않으며 감정의 언어로 윤리성 만 넘지 않는다면 분노 까지도 문학의 그늘이 될 수 있다.

금년 12월은 나라에 잊을 수 없고, 온 나라가 기쁘고 행복해 해야할 한 주간행사가 있었다.

3일에는 계엄령이 내려지고 6일부터 세계가 주목한 노벨주간이 스웨덴에서 시작되었다. 10일에는 한강이 세계인이 지켜보는 노벨상을 스톡홀름에서 받았고 성대한 연회가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14일에는 우리나라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 됐다.

6공화국의 노태우는 북방외교를 펼치면서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자" 는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1974년 실미도에 있던 복파 공작원(HID)의 수용소에서 불만을 품은 수용자들이 버스를 탈취해서 중앙청으로 가던 중 노량진 유한양행 앞에서 대치, 비참하게 끝이 난다. 지금 공수특전단이 창설되기 이전의 같은 업무를 수행한 지금의 707(HID)가 북파공작원이다.

戰時에는 적진의 수뇌를 제거.납치를 한다. 낙하산을 메고 투입하며 평상시에도 늘 죽음을 각오하며 훈련에 임한다. 평시에는 국가의 원수가 제주도나 먼 지방을 순시 때 사전 투입하여 VIP의 안전을 보이지 않게 책임진다.

박근혜 탄핵시절 나는 청와대 주변에 살면서 잦은 시위 때문에 출퇴근이 힘들었다. 그 앞을 지나다보면 지붕위에서 기관총을 들고 보초서는 걸 보았다. 남북관계를 어렵게 하고 국가 지도자로서 일도 하지 않으면서 큰집을 무료로 사용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많은 군인 경찰 경호원이 미 백악관보다 많다는 얘기를 대선 때마다 들었기에 근무자를 한 번 알아보니 2천여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1982년 2월 5일 전두환의 제주도 방문 전 그 공수부대 요원 53명을 태운 군 수송기가 일기불순으로 한라산에 추락하여 탑승한 부대원 53명모두 순직했다.

피해자 가족에게 시신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사망신고서 만 보냈다고 한다. 이후 2012년, 순직 30주기 추도식에서 피해가족, 어머니들은 "30년 동안 눈물샘이 마른지 않았다" 며 집단으로 항의를 했다. 그리고 국가를 원망한 기사는 훗날에 감춰진 듯 지방신문에 쓰여 졌다.

또 같은 해 1982년 6월1일에 같은 기종 C123으로 성남 부대에서 이륙한 수송기는 날씨 관계로 청계산 능선에 53명의(공군5명포함) 공수특전사 군인이 희생되었다. 그 희생자 가족들은 전두환의 사망 직전까지 사과 한 번 받지 못했고, 억울한 죽임은 어두운 역사 속에 영원히 묻혀버렸다.

물론 군인은 어떠한 계절 환경에서도 전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평상시 근무 중에 지휘관의 오판으로, 귀한 생명을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12월 3일 계엄 발령 시 전방 부대에서 사병들이 유서를 썼다며 휴대폰으로 부모에게 유서를 보내와 후방의 국민들까지 큰 충격을 받았다. 화가 난 백성들은 이전의 쿠데타에서 느끼던 것보다 색다른 정보기능에 놀랐다. 또 젊은 군인들이 현명하며 놀라울 정도로 국가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반 헌법적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도 우리는 늦게 알았다.

밀레니엄 이후 늦봄, 6월 1일 그날은 주말이었고, 나는 청계산의 계곡 길을 따라 등산을 하게 되었다. 작은 개울가에 일찍 피었던 꽃잎이 마치 흰 눈 내린 듯 뿌려져 있었고 정상 쪽으로 올라가던 중 9부 능선쯤에서 상복을 입을 많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날이 마침 제삿날이란다. 잘 정돈된 충혼탑이 있었고 나는 그곳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군인들의 계급과 이름을 일일이 확인했었다. 공군과 육군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6.25이후 천암함 사고(46명사망) 이후로 가장 많은 사망 사고라고 했다.

내가 군대생활 기간 중 부대원들이 한탄강에 모래, 자갈 채취 작업을 마치고 귀대하다가 작업 차량인 덤프트럭이 계곡으로 전복되어 3명이 사망했었다. 합동 위령재를 연병장에서 했고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피해 유가족들이 부대장에게 달려와 내 자식, 내동생, 내조카를 살려내라며 서있던 중령에게 달려들어 계급장 등 옷을 하나씩 찢었고 지휘 책임이 있는 부대장은 그렇게라도 해서 참회를 당하듯 이를 악물어 버티고 있던 모습을 보았다.

한강은 말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을까?"

"산자가 죽은자를 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칼 뒤에 숨어서 힘없는 국민들을 협박했고 국어사전까지 잘못 고처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금도 취중에 울고 싶을 때, 국민들이 계엄이란 회초리로 벌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보습을 녹여서 다시 총 을 만들어 보겠다는 지도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이번에는, 청소를 잘 해서 후손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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